세상은 왜 이리 불공정할까? 힘이 법이 된 세상과 성경의 대답
1. 모순된 세상과 인간의 근원적 한계
힘이 지배하는 현실, 그리고 인간 본성의 서글픈 그림자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존재를 꼽으라면 단연 인간일 것입니다. 동물 세계의 생존 법칙인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은 그저 삶을 이어가기 위한 본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 스스로 만든 물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다 허무하게 죽음에 이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공평하지 않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라는 씁쓸한 말이 증명하듯, 법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권력과 재력에 따라 죄의 무게가 달라지곤 합니다. 공정해야 할 법조계의 비리와 강대국의 부당한 폭력이 판치는 현실은, 어쩌면 이 세상이 힘(Power)과 어둠의 권세에 지배받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하지만 질문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만약 인간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토록 불공정한 세상에서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짐승과 달리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영(Spirit)’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육체의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닌, 공의의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의 심판대 서게 되는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됩니다.
2. 인간이 정의하는 선과 악의 상대성
문화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윤리의 가변성
그렇다면 인간이 수없이 저지르는 ‘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전적으로 죄는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 또는 법률에 위반되는 불법 행위’로 정의됩니다. 그러나 이 정의가 온 인류에게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정한 선과 악, 그리고 윤리와 도덕은 시대와 문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환경에 따른 규범의 차이: 현대 도시에서 길거리에 소변을 보는 것은 경범죄이자 몰상식한 행위이지만,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는 아프리카의 오지 밀림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일 뿐입니다.
문화에 따른 장례 풍습: 티베트의 전통 장례 방식인 천장(天葬, Sky Burial)은 시신을 새들의 먹이로 내어주는 의식입니다. 외지인의 시선에는 다소 충격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망자의 영혼을 보살피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관점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선과 악은 결코 만인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3. 성경이 조명하는 생존과 죄의 경계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과 인간의 자의적 양심
성경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행위와 탐욕으로 인한 죄를 엄격히 구분합니다. 신명기 23장 24~25절의 말씀이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포도나 이삭을 따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위이므로 죄가 되지 않지만, 그것을 그릇에 담거나 낫을 대어 가져가는 것은 타인의 소유를 침해하는 ‘도둑질’이자 죄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 배가 고파 남의 과수원 과일을 따 먹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그가 어려서부터 ‘생존을 위한 행위는 죄가 아니다’라고 배웠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타인의 재산에 손대는 것은 무조건 죄’라고 배웠다면 깊은 죄책감을 느낄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양심과 인식조차 교육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가변적인 기준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4. 절대 진리로서의 선과 악, 그리고 죄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그 영적인 실체
인간의 가변적인 기준을 넘어, 성경이 밝히는 선과 악, 그리고 죄의 진정한 본질은 매우 명확합니다.
1) 죄의 본질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절대 선(善)이시며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 3:14). 따라서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법)에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것 자체가 바로 악(惡)이자 죄(罪)입니다.
2) 선악과의 사건과 죄의 인식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만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지녔으나 선과 악을 구분하는 자의적 기준은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과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창 3:7).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단순한 시력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려는 주체로 서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부끄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절대 기준을 찾아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불공정하고, 인간이 만든 법과 윤리는 시대에 따라 흔들립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영혼의 울림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죄는 어디서 오며, 우리는 무엇으로 정결해질 수 있는가?”
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은 나의 허물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의 상대적인 잣대에 스스로를 위안하기보다, 절대적인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돌아볼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선과 진리, 그리고 영원한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